동고서저 지형이 한국인의 삶과 도시에 미친 영향

1. 한반도의 뼈대, 동고서저 지형이란 무엇인가

중학교 사회 시간이나 지리 시간에 한 번쯤 ‘동고서저(東高西低)’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말 그대로 동쪽은 높고 서쪽은 낮다는 뜻입니다. 

한반도의 지형을 아주 단순화해서 단면으로 잘라보면, 동쪽은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가파른 절벽처럼 솟아 있고, 서쪽으로 갈수록 완만하게 평야로 내려오는 비대칭적인 경사를 이루고 있습니다.

처음 지리학을 공부할 때 많은 분이 "그냥 지형이 그렇게 생겼구나" 하고 단순 암기하고 넘어갑니다. 

하지만 이 동고서저라는 네 글자 안에는 우리가 지금 왜 이 도시에 살고 있고, 왜 서해안으로 여행을 가며, 왜 경부선 철도가 그렇게 깔렸는지에 대한 모든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한반도의 지형적 특징은 수천 년 동안 한국인의 삶의 양식을 결정지은 거대한 캔버스와 같습니다.

이 독특한 지형이 만들어진 원리는 수천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신생대 제3기 경동성 요곡운동이라는 거대한 지구의 움직임으로 인해 한반도의 동쪽이 들어 올려졌습니다. 

동쪽에서 힘을 받아 융기하면서 한반도는 거대한 비대칭 경사판이 되었고, 이 구조는 한국의 강과 평야, 그리고 도시의 운명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2. 강줄기의 방향과 평야의 형성: 왜 서쪽에 사람이 몰려 살까

지형이 동고서저이다 보니 물은 자연스럽게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한반도의 주요 강들인 한강, 금강, 낙동강(남쪽으로 흐르지만 결국 남서쪽으로 빠지는 구조) 등은 대부분 동쪽 산간 지역에서 발원하여 서해와 남해로 흘러갑니다.

강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길게 흘러가면서 재미있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강이 상류에서부터 흙과 모래를 깎아 하류로 운반하는데, 서쪽으로 갈수록 경사가 완만해지다 보니 물의 속도가 느려집니다. 

이때 강 주변과 하구에 운반해 온 흙이 쌓이면서 넓은 충적 평야가 만들어집니다. 

호남평야, 나주평야, 김포평야 등이 모두 이렇게 탄생한 서쪽의 곡창지대입니다.

전통 농경 사회에서 평야는 곧 생존이자 부의 원천이었습니다. 

농사지을 땅이 서쪽에 몰려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인구도 서쪽 평야 지대를 중심으로 밀집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한반도가 반대로 '서고동저'였다면 지금의 서울이나 호남의 발전사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입니다. 

물길을 따라 쌀이 이동하고 사람이 모이면서 서부 지역은 역사적으로 경제와 행정의 중심지로 확고히 자리 bend하게 되었습니다.

3. 교통망의 발달과 도시의 커넥션: 산맥을 넘는 지혜

지리적 제약은 인간의 이동 경로를 제한합니다. 

동고서저 지형 때문에 동서 간의 교통은 언제나 큰 장벽이었습니다. 

높은 태백산맥이 가로막고 있는 영동 지방(강릉, 속초 등)과 영서 지방(춘천, 원주 등)은 오랜 시간 동안 심리적으로나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대관령이나 한계령 같은 높은 고개를 목숨 걸고 넘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서쪽과 남쪽을 잇는 남북 교통망은 상대적으로 완만한 지형 덕분에 빠르게 발달했습니다. 

현대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경부고속도로와 경부선 철도 역시 이 완만한 지형적 흐름을 따라 건설되었습니다. 

산을 깎고 터널을 뚫는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대량의 물자가 수송하기에 가장 유리한 입지였기 때문입니다.

최근에는 터널 굴착 기술과 교량 건설 기술이 발달하면서 대관령을 몇 분 만에 통과하는 KTX가 뚫렸지만, 과거의 지형적 한계는 여전히 도시의 규모와 성격에 남아 있습니다. 

동쪽의 도시들은 주로 천혜의 자연경관을 바탕으로 한 관광 및 항구 도시로 발전한 반면, 서부와 남부의 도시들은 거대한 교통망을 축으로 삼아 거대 산업 도시로 성장한 것이 그 증거입니다.

4. 동해안과 서해안의 삶의 양식 비교

지형의 경사는 바다의 성격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동쪽은 급경사로 바다와 만나기 때문에 해안선이 단조롭고 수심이 급격하게 깊어집니다. 

파도가 강하게 치면서 모래사장이 발달해 해수욕장이 많고, 수심이 깊어 대형 선박이 들어오기 좋은 항구(포항, 울산 등)가 발달하여 중화학 공업의 전초 기지가 되었습니다.

반면 서쪽은 완만한 경사가 바다 밑으로도 그대로 이어집니다. 

수심이 얕고 조수간만의 차이가 커서 세계적인 규모의 갯벌이 형성되었습니다. 

서해안의 주민들은 동해안 주민들처럼 깊은 바다로 나가 고래나 명태를 잡는 대신, 넓은 갯벌에서 조개를 줍고 염전을 만들어 소금을 생산하는 삶의 방식을 발전시켰습니다. 

지형의 기울기 차이가 누군가에게는 깊은 바다의 어업을, 누군가에게는 갯벌의 어업을 선물한 셈입니다.

[핵심 요약]

⏺한반도는 신생대 요곡운동으로 인해 동쪽이 높고 서쪽이 낮은 '동고서저' 경동지형을 이룹니다.

⏺이로 인해 주요 강들이 서쪽으로 흐르며 넓은 평야를 형성했고, 이는 서부 중심의 인구 밀집과 농업 발달로 이어졌습니다.

⏺험준한 동쪽은 관광 및 대형 항구로, 완만한 서·남쪽은 교통망을 중심으로 한 거대 산업 도시축으로 성장했습니다.

 

[다음 편 예고]

다음 편에서는 한반도의 뼈대를 이루며 기후와 생태계를 동서로 가르는 거대한 장벽, '백두대간의 구조와 한반도 생태축의 지리적 의미'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여러분은 높은 산과 깊은 바다가 있는 동해안과, 넓은 평야와 갯벌이 있는 서해안 중 지리적으로 어느 쪽이 더 매력적이라고 느끼시나요? 자유로운 의견을 댓글로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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